해보면 알수있지

그것이 알고싶다-1089회 도둑골의 붉은 유령 - 여양리 뼈 무덤의 비밀


이번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경남 마산에 여양리에 있는 뼈무덤에 대해서 파헤쳐본다고 합니다..


경남 마산 여양리는 골짜기를 따라서 몇개의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도둑골로 들어서면 저수지를 따라 낡은집들이 있는데 여기 마을주민들은 많은 무서운 기운을 느꼇다고합니다.

버스를 운전하는데 아무도없는데 버스벨이 울리고, 여자의 희미한 잔상들이 보이고...

어휴 말만 들어도 섬뜩한 시골 동네네요....정말 무서울듯 합니다...





마을에 이런 원인이 밝혀진건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해서였습니다

마을에 수십여구의 유골들이 밭으로 쏟아졌습니다.


주민들은 유골들은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주민들은 그 유골의 비밀들을 아는걸까요?

그리고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국민 학교 올라올 때 여기서 죽이는 거 봤거든. 총으로 쏴 죽이는 거.” 

-마을 맹씨 할아버지-


“온통 빨갰어요. 비가 와서 냇가가 벌겋게 물들어있었다고.”

-마을 이장 박씨- 




총 200여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과연 어떤한 사람들이 였을까요?


마을 주민할아버지는 낯선사람들이 트럭에 실려왔고 그후 총살시키고 모두 뭍었다는 것이였습니다.


1949년 이승만 정부는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는데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보도연맹원을 학살한것이였습니다.


보도연맹의 원형은 친일파와 연결되어있다고 하네요.

친일파는 친일이라는 치부를 덮고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빨갱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드러난 마을의 비밀


경남 마산의 여양리에는 골짜기를 따라 몇 개의 작은 마을이 흩어져있다. 도둑골로 들어서면 저수지를 따라 낡은 집들이 있다. 도둑골엔 이따금씩 흉흉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사고에 관한 것이었다. 


"여긴 혼자 오기가 무서워요. 아무도 없는데 버스 벨이 울린다니까.“

-여양리 버스 운전기사-


여양리는 마산 버스 운전기사들에게 피하고 싶은 노선이다. 여양리 버스 종착역에 다다르면, 희끄무레한 여인의 형상이 보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오래전 마을의 비극을 떠올렸다. 그리고 침묵했다. 



마을의 비극이 세상에 드러난 건 2002년이었다. 태풍 루사로 여양리에 큰비가 내렸다. 비에 휩쓸려 수십 여구의 유골이 밭으로 쏟아졌다. 밭 주인은 놀라 경찰에 신고했지만 마을 노인들은 묵묵히 유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이내 오랜 침묵을 깼다. 


“국민 학교 올라올 때 여기서 죽이는 거 봤거든. 총으로 쏴 죽이는 거.” 

-마을 맹씨 할아버지-


“온통 빨갰어요. 비가 와서 냇가가 벌겋게 물들어있었다고.”

-마을 이장 박씨- 


오래전 그날의 일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가해자는 누구였을까?  



#모두가 알지만 숨겨왔던 이야기 


마을에 유골이 쏟아져 내려 한바탕 난리가 나고 2년 뒤, 경남지역 유해 발굴팀에서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수 십 여구에 불과한 줄 알았던 유골은, 구덩이마다 쌓여있었다. 총 200여구의 시신이 여양리 뒷산에 긴 시간 잠들어있었던 것이다. 해진 양복과 구두 주걱, 탄피 등도 유해와 함께 발굴됐다. 발굴팀은 유류품을 토대로, 죽음을 당한 인물이 누구였는지 추적에 나섰다.


“모내기하는 사람도 끌려갔고 뭐 집에서 그냥 일 보던 사람도 끌려갔고. 여긴 얼마 안 죽였어. 한 200명.”

-동네 주민-



1950년 여름날의 마산 여양리, 맹씨 할아버지는 그날도 비가 많이 내렸다고 기억했다. 미끄러운 길을 뛰어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할아버지가 가던 길을 멈춘 건 수십 대의 트럭 때문이었다. 여양리 너머에서부터 낯선 얼굴들이 트럭에 실려 왔다고 했다. 이내 어디선가 큰 총소리가 들려왔고, 비명이 이어졌다. 얼마 후 경찰은 마을 청년들을 시켜 죽은 사람들을 묻으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포승에 묶인 채 총을 맞은 시신과, 도망가려다 시체에 깔려 죽어 뒤엉킨 시신을 묻어주었다. 왜 그날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죽어야 했을까?



1949년 이승만 정부는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다. 그런데 조직을 키운다는 이유로 사상과 무관한 국민들도 비료며 식량을 나눠 준다며 가입시켰다. 심지어 명단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전투와는 관련 없는 지역에서 보도연맹원을 대량 학살했다. 좌익 사상을 가진 적이 있다며, 언제든 인민군과 연합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가가 나서 보호하겠다던 보도연맹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들은 불순분자로 간주됐다.


“지금도 유족회에 나오지 않는 유족들이 많아요. 아직도 빨갱이 집안이라는 낙인을 두려워 하니까요.”

-당시 여양리 유해 발굴 취재 기자-



#현재 진행 중인 과거, 붉은 유령


보도연맹의 원형은 친일파와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반대자들과 독립운동가의 사상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 이른바 ‘보국연맹’이며 ‘야마토주쿠’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후 친일 검사와 경찰들이 야마토주쿠와 꼭 닮은 보도연맹을 창설한 것이다. 


“빨갱이 만들면 어떻게 해요? 큰일이지. 그걸 막으려고 한 게 보도연맹이지. 일제시대 야마토주쿠 그런 걸 만드려고 한 거거든.“

-보도연맹을 기획한 검사 선우종원-



친일파는 친일이라는 치부를 덮고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반대자들을 ‘빨갱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실체조차 불분명한 오랜 혐오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남하한 우익민족주의자도,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저항한 시민들도,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도 ‘빨갱이’로 불리고 위험한 존재로 몰렸다. 그리고 그 낙인은 지금도 이어진다.    


“세상이란 건 그런 거예요. 언제든지 공평하지 않은 게 인생이라고요. 과거로 세월 보내는 사람들 때문에 국가의 힘이 낭비된다고요.“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보도연맹 위원의 아들-


“우리 빨갱이 자손으로 보니까 그렇잖아요. 우리 아버지 빨갱이 아니라고 그렇다고 길에 나가서 고함지르고 다닐 수도 없잖아요.“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의 아들-





그것이알고싶다에서 그리고 독립운동가 집안과 친일파 집안을 비교해줄꺼 같네요. 이것에 대해 논쟁이 많더라구요.

이번 방송 기대 되네요 꼭 본방사수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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